2009년 08월 08일
나의 성은 입니다
나의 성은 X입니다
“응애”하고 세상에 첫 인사를 건넸을 때만해도 나는 아직 아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내 가랑이 사이를 슬쩍 살핀 후, “축하합니다. 예쁜 공주님이네요.”라고 말하자마자 나는 ‘여자’아기가 되었다. 그 뒤로 내 삶은 ‘여자’라는 따옴표 사이를 벗어나지 않았다.
내가 x였다면 좀 더 위험천만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x였다면 좀 더 천진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는 거대한 실험실에서 길러지고 있는 것만 같다. 한쪽 방은 파란 아기 옷을 입히고 레고를 쥐어주는 방, 한쪽 방은 분홍 아기옷을 입히고 바비인형을 쥐어주는 방. 그 기준은 페니스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르고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떻게든 기준에 맞춰서 어디론가는 꾸역꾸역 끼워넣어야 하는 그런 방.
왜 나는 ‘여성’이 아닌 나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까? ‘여성’에게 강요되는 수많은 명령들에 자주 숨막힐 것 같으면서도 다시 또 다시 ‘여성’으로 보이려 애쓰기만 할까? 아름다운 것은 나의 다양한 가능성들이 쏟아져나오는 관계,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잠재적이지만 강력한 힘이 목까지 차오를 때 그걸 꿀꺽 집어삼켜 답답한 숨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목까지 차오르는 나의 내면이 걸리는 것없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무지개색으로 차르륵 쏟아질 때 그게 아름다운 것이지.
너무 오래 가면을 쓰고 있어서 이제는 얼굴거죽에 들러붙어버렸나 보다. 어떤 것이 맨얼굴인지, 맨얼굴이란 게 원래 있기나 한 건지도 잘 모를 정도로 너무나 익숙하게 여성성-남성성은 나의 살가죽에 찰싹 들러붙어 있다. 목소리와 표정, 말과 행동, 꿈과 절망까지도 가면에 맞추어 상영된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으면 가면놀이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오래 쓰고 있던 탓에 이제는 가면을 벗는 게 무섭고 가면놀이에서 왕따가 되는 게 무섭기도 하지만, 맨 살갗으로 맞는 바람은 훨씬 더 차갑고 훨씬 더 생명력 있다.
x가 되어서 밥을 먹어보자. x가 되어서 운동을 해보고 x가 되어서 춤을 춰보자.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그대로 축구를 하러도 가보고, 밥을 많이 먹고 싶은 날은 와구와구 적게 먹고 싶은 날은 딸그락딸그락 먹어보자. 쉬폰 치마에 커다란 운동화도 신어보고, 미소를 짓다가 신나면 발을 쿵당당 구르며 뛰어보자.
x가 되어서 또 다른 x에게 인사하고, x와 산책을 하자. x가 되어서 또 다른 x를 사랑해보자. x와 x의 사랑은 미리 정해진 포옹의 방식도 없고, 언제나 한 쪽은 이끌고 한 쪽은 이끌려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보다는 오로지 서로에게 집중하는 관계, 그 속에서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잠재된 힘을 이끌어내주는 관계, 나를 제약하기 보다는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관계! x와 또 다른 x가 만날 때 우리의 관계는 들꽃보다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헛소리인가? 아니면 시궁창에서 절박하게 피어난 진심인가?
# by | 2009/08/08 00:05 | 트랙백 | 덧글(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