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19일
[짝짝짝] 헌 옷으로 가방 만들기


놀러오세요.
# by | 2008/08/19 00:46 | 트랙백 | 덧글(0)
감상이 짧아진다.
<당신은 나의 베스트셀러>
영화를 보고 나니 소설을 쓰고 싶었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헐리우드 로맨틱 코메디,라고 써도 되려나?
쿠바 혁명이 그야말로 하나의 '소재'로 쓰여서 아쉬웠다. 그걸 물고 갔다면, 그래서 몇 십년 전 쿠바를 선택한 아버지와 지금 파리의 골드미스라고 자부하는 딸의 교차지점을 세밀하게 보여줬다면 더 오래 기억할 영화였을지도 모른다.
<하나와 앨리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는 후유증이 심하다. 아마 이 영화도 그럴 것이다.
하나와 앨리스의 친밀감도 '가까움'이나 '일치감'에서 '적당한 거리감'으로 옮겨가는 것일까? 발달심리학인가하는 책에서 그것이 친밀감이 '성숙'해가는 거라고 했는데 나는 알 것같기도 했지만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앞으로 그녀들은 다른 취미를 가지고 다른 직업으로 돈을 벌 것이다.
앨리스에게 아버지의 부재(혹은 물리적 거리감)는 거짓말이라는 유희로 해소될 수 없는 것이었을까. 것이었겠지. 것이었겠지.
<미스트리스>
어머니와 동생과 셋이서 보게 된 것이 (섹슈얼리티에 대한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는 점에서는)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상치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후에 어머니는 성교육을 해야겠다면서 <아름다운 사랑과 성>이라는 책을 주셨다. 그 책에는 여러 체위와 흥분한듯한 여성의 얼굴이 떠다녔다. 슬쩍 뒤적거리는 척을 하다가 곧 어머니께 돌려드렸다. 어머니는 "여자 몸은 여자가 관리해야지"라며 책을 다시 쥐어주셨다.
영화 속의 벨리니와 마리니의 관계는 선정적이었지만 아름답지는 않았다. 당시의 시대에서 이러한 관계가 하나의 파격으로, 그래서 권위에 대한 유효한 공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는 문장이 떠오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는 나의 '관계'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자아를 파괴시키는 것을 알고서도 그의 유혹에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내겐 없었으면 한다. 누군가에게 그런 '팜므파탈'이 되고 싶지도 않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천연 꼬꼬댁)>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영화를 청해와서 함께 조조로 보게 되었다. 예상대로 영화는 아름다웠고 이후의 대화도 그러했다. 청국장을 먹으며 그 사람은 '왠지 당신이랑 있으면 옛날 얘기를 하게 되요.'라고 했는데, 아직도 그 이유를 혼자 생각해보고 있다.
마지막의 칠판과 교실의 롱테이크는 모두가 간직할법한 추억이지만 늘 새롭고 늘 먹먹한 장면이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래, 그렇게 떠들어대던 '남자'들의 로망이 이거야? 나는 '남자' 영화에 재미를 못 느낀다는 경험적 가설을 재확증하게 되었다.
# by | 2008/08/05 18:05 | 후감 | 트랙백 | 덧글(2)
# by | 2008/08/05 17:45 | 후감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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