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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젠더 몸의 탄생 : <미녀는 괴로워>가 젠더경합을 무마하는 방식에 대하여

시스젠더 몸의 탄생 : <미녀는 괴로워>가 젠더경합을 무마하는 방식에 대하여

 


 

#1. 여성학 수업시간 학생들은 “여기에는 없겠지만”이라 운을 떼며 동성애자를 없는 취급했다. 모를 수 있다는 권력,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권력. 이성애는 “동성애가 아닌” 것이다. 이성애는 질문할만한 거리가 아니다. 세상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라는 둘로 나누고 육욕, 번식 불가능, 성병 등을 동성애자에게 귀속시킬 때만, 동성애가 아닌 것으로서 이성애의 정상성이 생겨난다. 이성애가 본질적인 것, 심지어 자연적인 것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손쉽게 자기 바깥의 존재에게 모든 혼란을 투사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2. 페미니즘 세미나 참가자들은 “사실 저는……”으로 시작하는 여성의 고통을 고백해야 했다. 공감할 수 있다는 전제, 같은 역사를 경험하고 있다는 전제. 여성은 “남성이 아닌” 집단이다. 여성 젠더는 남성억압의 결과로 구성된다. 세상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개의 젠더로 나누고, 지배, 패권, 폭력과 같은 이성애주의 가부장사회를 남성과 동의어로 사용할 때만, 남성의 피지배집단으로서 여성의 공통성이 생겨난다. 이를 혼란시키는 여성들 사이의 젠더 차이는 삭제된다.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자라난 가장 여성스러운 여자만이 페미니즘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이 글은 이원젠더의 거짓말을 멈추기 위한 것이다. 다양한 젠더 표현을 “여성성/남성성”으로 분류하는 근거는 “몸”이다. 성기와 염색체라는 확고부동한 기준이 있고, 이것이 여성/남성 중 하나에 귀속되는 근거가 되며, 그러므로 누구나 여지없이 여자 몸/남자 몸으로 태어난다는 서사들. 이 속에서 트랜스젠더는 태어난 몸을 바꿨다는 이유로 “가짜 여성/남성”이 된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은 “자연산”인가? 쌍커풀 수술은 졸업 선물이지만 성기 변형수술은 신을 거스르는 것인가? 바꾼다는 몸은 어느 곳이고, 바뀌지 않는다는 젠더는 어떤 부분인가? 그러니까, 애초에 시스젠더1)는 가능한가?

 

“그리하여 트랜스/젠더 정치학은 ... 개개인들(트랜스건 아니건 상관없이)이 여성, 남성이라는 젠더 호명과 어떻게 경합하고 협상하며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구성하는지를 묻고, 여성과 남성이 있다는 믿음 자체가 젠더(이데올로기/신화)이기에 그런 것이 환상임을 밝히는 작업이다”2)


1. 미녀는 젠더경합을 분명히 겪었다.  

 

  루인에 따르면 모든 성별화된 주체는 젠더경합(gender dysphoria)을 겪는다. 기존에 젠더경합은 ‘몸과 마음의 갈등’을 표현할 때, 즉 트랜스젠더의 불만, 불편, ‘불일치’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사용은 트랜스젠더 젠더실천을 병리로 낙인찍고, 그를 토대로 시스젠더 젠더실천의 자연스러움을 증명해왔다. 그러나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몸과 마음의 젠더가 일치하지 않는다. 젠더규범은 염색체나 성기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학교와 같은 사회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 태어난 생명을 국가와 의료산업이 여성/남성 중 하나로 호명한다. 곧바로 젠더규범은 “여자는 원래 그래.” 혹은 “남자라면 이래야지.”와 같은 자연 질서로 스며든다. 이때 젠더규범을 얌전히 따르는 실천은 자아가 원하는 실천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많은 경우에 규범의 존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일탈했을 때 규범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주위로부터 “여자/남자답지 않다” 혹은 “진짜 같지 않다”는 반응에 접했을 때, 바로 그때 젠더규범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드러나게 된다.3) 이원 젠더는 일상을 전방위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이상적인 여자/남자의 조건은 때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어떤 사람은 몸무게가 45kg이라도 종아리에 근육이 많아서 날씬한 여자가 아니라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매끈한 다리를 가졌어도 몸무게가 55kg이라 날씬한 여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선을 보는 자리에서는 몸가짐 조신한 아가씨가 되어야 하지만, 클럽에 가서는 헤퍼서 섹시한 미녀가 되어야 한다. 규범을 벗어날 때 불이익, 폭력, 배재가 다가올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과 공포심을 통해 젠더규범을 체화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누구도 삶의 모든 순간을 완벽한 여자/남자로 살 수는 없다. 애초에 여자다운 여자/남자다운 남자의 고정적인 의미는 애매모호함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원 젠더는 언제나 부재에서 동력을 얻으며, 노력은 영영 끝나지 못한다.

  루인의 정의가 구체적인 분석틀로 사용되는 모습은 홀리 데버의 여성 젠더경합female gender dysphoria 모델에서 발견할 수 있다.4) 데버는 한 사람의 몸 형태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적 의미망의 맥락에서 젠더 경함을 바라볼 것을 제안하면서 젠더역할, 젠더정체성, 젠더크로싱, 생물학적 성에 대한 부대낌, 생물학적 성 전환과 같은 기준으로 여성 젠더경합을 분석한다. 톰보이, 페미니스트, 바이섹슈얼, 레즈비언, 젠더퀴어, 부치, 크로스드레서, FTM 등의 다양한 젠더실천을 4가지 층위(mild, intermediate, high, extreme)에 걸친 젠더경합으로 의미화된다. 이 중 폭식증bulimia nervosa5)에 대한 분석은 날씬한 여성이라는 규범적인 젠더가 경험하는 갈등과 공포를 지적한다. 폭식증은 살로 이루어진 실제의 몸과 이상적인 여성의 몸, 실제의 삶과 젠더규범 사이의 화해불가능을 표출하는 몸의 언어이다. 시스젠더 여성이 여성성을 구현하는 과정 역시 끊임없는 몸의 통제와 변형을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루인과 데버에 이르면 두 개의 섹스에 기반한 두 개의 젠더라는 이원젠더의 자연스러움은 무너져 내린다. 여자 몸female body이 여성성femininity을 추구하는 과정, 남자 몸male body이 남성성masculinity을 추구하는 과정 역시 결코 자연스럽지 않으며, 굉장한 긴장과 갈등의 연속임이 드러난다. 모든 젠더는 드랙이라던 버틀러의 주장과 같이 가장 규범적인 시스젠더 여성성과 남성성마저도 수행성의 결과로 위치하게 된다. 트랜스젠더를 병든 존재로 내몰았던 젠더경합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시스젠더의 안전망을 뒤흔드는 키워드로 전유된다. 모든 젠더 (정)체화 과정은 규범을 불안정하게 패러디하며 몸을 변형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젠더주체는 트랜스-젠더가 된다.

 

  사실 <미녀는 괴로워>는 기존의 트랜스젠더 서사와 무척 닮아있다.

  ‘한나’는 뚱뚱하다. 한나는 한상준이라는 남성에게 사랑받기 원한다. 한나는 무대 밑에서 노래하지만 정말은 가수를 꿈꾼다. 그러나 한나는 뚱뚱하다. 못생긴 여자는 '반품'되는 사회에서 한나는 잘해야 무시 받고 심하면 혐오 받는다. 뚱뚱한 몸은 섹슈얼리티와 커리어의 실현을 모두 가로막는다. 이를 절감하고 어느 날은 자살을 시도한다. 그 순간 우연하게 의사로부터 전화가 오고 그를 통해 전신 성형수술을 하게 된다. 한나는 사라지고 '제니'가 태어난다. 제니는 한나였음을 감쪽같이 숨기고 캘리포니아에서 온 신인이 된다. 한나가 노래하던 연예 프로덕션에 들어가서 자연미인이라는 컨셉으로 가수 데뷔를 한다. 제니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고 프로듀서인 한상준과 키스를 한다. 그러나 거짓말에 대한 불안함, 아버지마저 부정해야 하는 죄스러움이 부푼다. 첫 콘서트 당일 스포츠신문은 과거를 폭로한다고 협박하고 회사 사장은 광고 짤리기 전에 누드화보를 찍으라고 명령한다. 결국 제니는 콘서트에 몰려든 관객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나였음을 고백한다. 커밍아웃 이후에 차별이나 멸시가 아니라 포용과 환대의 장으로 진입한 것이 기존 트랜스젠더 서사와 어긋나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다.

  젠더를 남성/여성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남성성들/여성성들/퀴어젠더들을 오가는 것으로 바라볼 때, <미녀는 괴로워>를 (루인이 말한 의미의)트랜스-젠더 서사로 독해할 수 있다. 수술 이전 한나는 ‘여성’으로 포착되지 못했다. 직원들에겐 웃음거리였고 한상준에겐 노래 그 자체였다. 주민등록 뒷자리는 2번으로 시작할지언정, 주변에서 여자로 대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자로 대해진 것도 아니었다. 한나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어떠한 성적인 기능을 하지 않는 ‘뚱녀-젠더’에 가까웠다. 엄마 같은 존재. 남성을 원하지 않거나 천박하게만 욕망하는 존재. 섹슈얼한 느낌 없이 껴안거나 쓰다듬을 수 있는 존재. 몸에 대한 수치심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없는 것처럼 침묵하거나 가장 추락한 사람을 돌보는 더 낮은 자리의 존재. ‘날씬’하거나 ‘보통’인 몸을 가진 여성만이 진입할 수 있는 직장과 연애시장에서, ‘뚱뚱’한 몸은 애초에 여성의 트랙으로 편입되지 못한다. 이때 한나는 목소리를 통해 다른 몸을 상상하게 할 때만 유일하게 ‘여성’으로 욕망되었다. 폰섹스라는 매개를 통해서 아저씨를 흥분시키는 간호사나 여고생의 몸이 되었고, 무대 밑이라는 장소를 통해서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유인나라는 립싱크 가수의 몸이 되었다. 이렇듯 한나는 실제 몸의 물성을  완벽히 제거한 채 청각의 영역에서 다른 몸의 시각을 전유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여성 젠더를 수행했다. 그러나 살을 빼고 얼굴을 바꿔 제니가 된 뒤에, 목소리와 몸의 불일치가 사라지고 마침내 칭송받는 ‘여성’으로 대해진다. 여성의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처음으로 획득하고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한나'에서 '제니'로의 몸-변형, 그것은 '뚱녀'에서 '미녀'로의 젠더-변형임과 더불어 여성으로 포착되고 기능하는 시스젠더-몸의 '탄생'이다.

 

2. 영화는 젠더경합을 일부러 지웠다.

 

  그러나 <미녀는 괴로워>는 이원젠더에 보위한다. 누구도 이 영화를 젠더-변형이나 시스젠더-몸의 탄생으로 읽지 않는다. 누구나 이 영화를 규범적인 여성을 향하는 서사, ‘반품’ 여성에서 ‘명품’ 여성으로 가는 정상적인 서사로 읽는다. 제니는 괴물이라는 칭호를 받지만 완전히 예뻐진 까닭이지 완전히 ‘다른’(혹은 ‘새로운’) 젠더로 탄생했기 때문은 아니다. 이것의 기묘함은 트랜스여성과 비교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트랜스여성이 화장이나 얼굴 성형수술을 통해 여성의 몸을 조형해가는 과정은 “너는 여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반면 제니로의 몸 변형은 오히려 한나 “너도 여자였”음을 확인시켜준다.(예뻐지고 싶어 하는 걸 보니 천상 여자구나, 이렇게 꾸며놓으니 여자인 걸 숨길 수 없구나) 트랜스젠더 여성의 몸 변형은 억지가 되고, 시스젠더 여성의 몸 변형은 자기개발이 된다. 시스젠더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의 젠더경합은 왜 이토록 다르게 여겨지는가? 왜 시스젠더 여성이 여성젠더를 조형하면서 뱉어내는 몸의 언어나 몸 변형들-거식, 폭식, 다이어트, 성형수술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가? <미녀는 괴로워>를 붙잡고 다시 물어보자. 영화는 어떤 장치들을 동원하여 한나의 젠더경합을 지워버리는가?

 

  첫째, 영화는 한나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도입부의 나레이션을 제외하면 끝까지 한나의 시선은 등장하지 않는다. 나레이션조차 가수가 되고 싶다는 사실, 한상준을 좋아한다는 사실 정도를 알릴뿐 이다. 관객은 다만 몇 개의 씬을 목격한다. 한나의 씬은 회사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듣는 짜증, 삼겹살집에서 친구 정민이 위한답시고 뱉은 질책, 화장실에서 우연히 들은 한상준의 비수 등이다. 제니의 씬은 “미모는 나의 무기”라며 거리를 활보하는 걸음걸이, 노래 실력을 빌어 치솟는 인기, 한눈에 반해버리는 마주친 모든 남자들이다. 영화는 이전까지 몸을 바꾸려는 노력(성형수술, 화장, 옷차림의 변화 등)에 절실하지 않던 한나가 왜 전신성형수술을 택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쏟아지는 짜증, 질책, 비수에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서, 어떠한 걸음걸이, 인기, 남자들을 원했는지에 대해서도 잡아내지 않는다. 한나가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어떤 젠더로 살기 원하는지 영화는 일절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은 이 급격한 전환에 별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만약 한나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트랜스했다면 영화는 제니를 향하는 여정에 좀 더 많은 설명을 제시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할 때 가졌던 감정, 좋아했던 사람의 성별정체성, 지금의 몸으로 인해 부대끼고 괴로워하는 과정을 삽입해서 한나에서 제니로의 트랜스가 합당한 것임을 증명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는 한나 앞에서도 관객들이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은 ‘여자로 태어난 여자’라는 익숙한 이원젠더 서사를 통해 한나를 독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소녀는 언제나 여성을 향하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길에 서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뚱뚱한 한나는 당연하게 고통을 겪을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날씬한 제니를 원할거라 가정된다. 정체성과 젠더규범 사이에서 부대낌을 겪는 트랜스젠더와는 달리 시스젠더는 애초에 부재를 통해 젠더규범을 체화하며, 따라서 시스젠더 젠더경합은 많은 경우 자기의문을 수면에 띄우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렇듯 몸-변형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개인의 경험이나 욕망을 삭제할 때, 젠더경합은 순식간에 가려진다.

 

  둘째, 영화는 제니의 괴로움을 보여주지 않는다. 제니는 순식간에 ‘자연미인’이 된다. 수술과 동시에 옷, 물건, 집을 모두 바꾼다. 과거의 몸을 유추할 수 있는 아이템을 모두 폐기하고 새로운 몸에 부합하는 아이템을 통짜로 구매한다. 전신성형이라는 시술방법은 몸 전체를 한 방에 규범으로 통과시켰다.6) 얼굴을 몇 번이고 변형하고 지방흡입과 런닝머신으로 몸무게를 빼는 오랜 과정에서 한나는 얼굴에 감아둔 붕대를 풀지 않는다. 수술대 위의 불완전한 몸으로는 어떠한 사회적 관계나 노동도 생산하지 않는다. 병원장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날이 되어서야, 얼굴과 몸매, 걸음걸이와 제스추어까지 빠짐없이 제니의 몸으로 완성된 이후에야 제니는 병원 밖으로 나가고, 운전을 하고, 오디션을 본다. 제니에겐 이전의 몸이 한 톨도 남아있질 않고, 보이는 모든 부위가 의심 없이 ‘자연산’으로 인지된다. ‘뚱녀’에서 ‘미녀’로 향하는 과정은 단절, 공백, 암전이며 겹쳐지거나 애매한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미녀’의 괴로움이 중심골자를 이뤘던 원작 만화7)와는 대조적이다. 일본에서 연재된 만화에서 주인공은 성형수술 이후에도 ‘뚱녀’였을 때의 습관이나 미처 다듬지 못한 몸의 부분으로 5권 분량 내내 부대낌을 겪는다. 비키니 라인 제모를 알지 못해 수영장에서 곤란을 겪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거나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다가 친구로부터 말을 듣고, 밤에 허름한 라멘집에 간다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집에서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왔던 생활습관이 노출될 때 아찔해한다. 뚱뚱한 여성으로 삶을 살아오면서 체득된 행동 양식이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성형수술 이후 취득한 ‘미녀’ 젠더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마찰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마찰은 한국 대중영화로 번역되며 자취를 감춘다. 하이힐을 신은 모델워킹, 남자와 와인을 마시는 애티튜드, 힙한 스타일의 옷을 고르는 취향 등 한나일 때 갖지 못했던 몸의 경험을 제니는 갑작스레 갖게 된다. 젠더 트랜스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고 언제나 이전에 존재한 몸의 역사 위에서 벌어지는 과정, 그로 인해 여러 개의 젠더가 하나의 몸에 공존하며 겹쳐지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 일절 생략된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 진행이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한나도, 제니도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뭉뚱그려지기 때문이다. 한나라는 시스젠더 여성에서 제니라는 시스젠더 여성으로의 전환은 서로 다른 경험이나 역할을 수행하는 젠더 전환이 아니라, 같은 경험과 같은 역할을 가진 젠더 내에서 위계의 전환 정도로 의미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는 굳이 한나의 몸 경험과 젠더의 불화를 드러내지 않고 발랄한 편집과 극적인 효과를 추구할 수 있었다. 시스젠더 젠더경합을 없는 취급하는 사회적 각본 위에서, 영화 역시도 “한나 -> 암흑 -> 제니”라는 단절된 서사, 몸의 역사가 삭제된 채 다른 젠더로 변신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서사를 사용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국가, 의료, 가부장체계가 틈입한다. 한나에서 제니로의 이행은 국가나 의료체계와 어떤 불화도 경험하지 않는다. 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이원젠더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국민국가와 그 속에서 운영되는 의료산업과 법체계들은 한나가 태어났을 때 이미 그를 “여성”으로 호명했을 것이다. 한나의 운전면허증이 “2”가 아니라 “1”로 시작되었다면 경찰관은 미인이라고 봐주는 게 아니라 변태라고 꼬투리를 잡았을 것이다. 한나의 의료보험증에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분류가 붙어있었다면 의사는 성형수술의 모델로 고소영이나 이나영이 아니라 장동건이나 원빈을 제시했을 것이다. 어떤-여성에서 어떤-남성으로의 젠더 이행은 국가 차원의 관리대상이 되지만 뚱녀-여성에서 미녀-여성으로의 젠더 이행은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다. 이처럼 한나가 별 의심이나 지체 없이 제니로 이행할 수 있었던 까닭, 제니로 이행한 이후에도 국가와 병원의 내부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까닭은 국가와 병원이 이원젠더를 구성하고 재생산하는 체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와서 이성애주의 가부장제는 한나의 젠더경합을 제 몸뚱이로 흡수한다. 한나의 젠더변환은 어떠한 다른 표현을 실천하느냐에 대한 수평적 변환이 아니라 얼마나 규범에 가까운가에 대한 수직적 위계가 된다. 전신성형수술은 프로듀서인 한상준의 애정을 획득하고 그와 더불어 가수로서의 인기를 얻기 위해 당연한 과정으로 그려진다. 젠더변형이 어떠한 자아를 원하는가, 어떠한 젠더로 사회적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단지 가수가 되기 위한 요건, 남성에게 사랑받기 위한 디폴트값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는 기존 이성애주의 가부장 체계가 시스젠더 여성 젠더경합을 무화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지난한 여성억압의 역사 속에서 여성성이라는 젠더는 남성적 시선이나 남성중심적 체계에 보위할 때만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여성의 젠더실천은 많은 경우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혹은 남성적 시선으로 구성된 노동시장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보상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스젠더 여성은 이성애남성이 욕망하는 날씬하고, 약하고, 수동적인 여성성 이외에 다른 젠더를 욕망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렇듯 한 인간의 섹스-젠더-섹슈얼리티가 분리되지 않고 사고되는 가운데, 시스젠더 여성의 젠더변환은 이성애중심주의, 거기에 기반한 섹슈얼리티의 실천으로 치환되어 버리는 것이다.

 

3. 한나이면서 동시에 제니인, 제니가 아니지만 한나도 아닌 시간에 대해

 

  그러므로 제니의 컨셉이 자연미인이었음은 의미심장하다. 자연미인은 여자 아이로 태어나  소녀로 길러져 결국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라났다는 일직선의 인생을 상징한다. 탄생부터 현재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간축과 공간축 모두에서 규범적인 여성을 재현할 때 ‘뱃속부터 미녀’로 인증받는다. 그럼에도 규범을 추구하기 위해 인공적인 변형도 노출되지 않을 때, 성형도 하지 않았으며 ‘쌩얼’도 아름다워 누구보다 “자연스러운” 여성이 될 수 있다.

  루인은 미시건 여성 음악 축제(the Michigan Womyn's Music Festival, MWMF)에서 벌어진 논쟁을 분석하면서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의 허구를 들춰낸다. 현대 사회에서 의료제도를 통과하지 않는 몸이란 없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여성’의 몸으로 인지된다는 것은 곧 태어날 때 의사가 여성으로 지정했으며 의료제도와 국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섹스/젠더를 지정받은 상태로 유지한다는 의미에 다름아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은 결국 생물학적 조건에 따른 여성이 아니라 의료제도와 국가제도가 공모하고 보증하는 여성이며 근대 가부장제가 여성을 억압하려는 기획으로 만들어낸 성별이분법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여성이 된다.8)

  이원젠더를 기반으로 몸을 해석할 때, 그에 맞지 않는 몸을 잘라낼 때, 그때 비로소 시스젠더의 몸이 탄생한다. 시스젠더의 몸 변형은 왜 젠더 변형이 되지 않는가? 그러니까, 시스젠더 여성-남성이라는 범주는 어떻게 자연으로 만들어지는가?

  한 사람이 딸/아들로 호명되는 과정, 여자애/남자애로 키워지는 과정, 그 과정에서 몸이 겪었던 불화와 갈등의 과정에 대해 더 많이 말할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원젠더의 폭력은 트랜스젠더에게만 못되게 구는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시스젠더라는 정체성과 그에 기반한 관계만 상상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사회 구석마다 포진한 것이었다. 이건 시스젠더도, 트랜스젠더도, LGBTAIQ와 그걸로는 표현될 수 없는 무수한 성/별정체성을 가진 모두에게 적용되는 폭력이었다. 나에게 이성애주의와 이원젠더로 짜여진 세상은 수용소같았고 거대한 공장 같기도 했다. 자아를 제한하라. 탄생부터 죽음까지 감시하라. 여자로 태어났으면 여자로 살도록, 여자로 태어났으면 남자를 좋아하도록 제조하라. …… 이 글은 지워졌던 몸의 흔적을 기록하려는 시도이다. 여성이나 남성 중 하나로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살아온 삶의 여정을 통해 젠더 경합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나이면서 동시에 제니인, 제니도 아니면서 한나도 아닌 애매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시간들. 내가 믿는 것은 그러한 시간들이며, 그러하게 살아있는 수많은 삶들이다.

 

 

 

 

참고문헌

 

루인, “젠더를 둘러싼 경합들gender dysphoria:트랜스/젠더정치학을 모색하며,”, 여/성이론 (2006. 겨울).

운조, “페미니스트 사전-트랜스젠더” 여/성 이론(2005, 여름).

Holly Devor, "Female gender Dysphoria" Personal Problem or Social Problem?", Annual Review of Sex Research 7. 1997

 

루인(배성민), 「젠더 범주의 다중성 연구」(2008, 서강대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논문).

 


1) 시스젠더cisgender란 “네덜란드의 ftm이 만든 표현으로 규범적 젠더를 지칭하는 non-transgendered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애자를 비동성애자로 지칭하지 않는 것처럼 트랜스젠더가 아닌 이들도 비트랜스젠더가 아니라 시스젠더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운조2005:308 각주7)

2) 루인, “젠더를 둘러싼 경합들gender dysphoria:트랜스/젠더정치학을 모색하며,”, 여/성이론 (2006. 겨울). 302쪽

3) 루인(배성민), 「젠더 범주의 다중성 연구」(2008, 서강대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논문). 61쪽

4) Holly Devor, "Female gender Dysphoria" Personal Problem or Social Problem?", Annual Review of Sex Research 7. 1997

5) 데버가 사용하는 폭식증bulimia nervosa은 많은 양의 음식물을 섭취하고 이를 한꺼번에 토해내는 몸의 증상을 의미한다.

6) 가슴은 솟아 있는데 쩍 벌어진 어깨 혹은 가녀린 얼굴선인데 걸걸한 목소리와 같이 서로 다른 젠더로 읽히는 표상들이 하나의 몸에 존재할 때, 그는 쉽게 이상한 존재로 마크될 수 있다.

7) 스즈키 유미코(鈴木由美子),《미녀는 괴로워》(カンナさん大成功です!, 1997~1998) (총5권)

8) 루인(배성민), 「젠더 범주의 다중성 연구」(2008, 서강대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논문). 69쪽


2010. 12. 24.
성과 문화연구 보고서

by 파니 | 2011/12/27 13:21 | (성과 문화연구) (여성주의)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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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665722 at 2013/03/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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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정말 힘든일이죠.

먹으면서도 칼로리 2/3가 소멸되는 방법이 있어요.

지방을 분해해주는 유기농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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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파니 at 2013/03/20 06:32
저한테 왜 이러세요...
Commented by at 2013/06/13 10:0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우세요
Commented by 달팽이 at 2014/03/09 19:01
젠더에 대해 찾다가 우연히 들어왔는데 익히 아는 영화를 다시 새롭게 보는 기분이 드네요.
동성애자를 트랜스젠더와 헷갈린다든가 여성은 여성적이고 남성적이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답답한데,
덕분에 공감하고 갑니다.
Commented by 파니 at 2015/11/02 10:47
앗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ㅇㄹㅇ at 2016/11/08 05:38
정말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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